글을 쓰고 싶었을 뿐인데 비즈니스 구조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에 관하여
아즈마 히로키의 신간, '지의 관객 만들기'를 읽는 중이다. 신간이라고 하기에는 벌써 국내에서도 4월에 출간된 책이지만, 해가 넘어가기 전에 손댄 게 어디랴...
유명한 서브컬처&미디어 비평가의 책인 만큼 최근 IT 환경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의외로 아즈마 히로키 본인의 에세이 내지는 회고담에 가까웠다. 그것도 겐론이라는 출판사를 차렸던 경험에 대한 '비즈니스 에세이'.
10년 전 국문학과에서 아즈마 히로키를 공부했던 내가, 이제는 스타트업 업계에 몸을 담은 채 그의 책을 읽으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먹물들도 결국은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세계인가? 싶어서.
일면 맞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한다. 결국 사업이라는 건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구조를 의미하니까. 사업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바꾸는 데 그나마 효과적인 형태라고도 생각한다. 괜히 지금의 AI 혁명을 기업들이 이끄는 게 아닐 거다. (쓰면서도 내가 많이 변했구나 싶어서 놀람)
'뭔가 새로운 것을 실현하려면 언뜻 본질적이지 않은 것이야말로 본질적이고, 본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면 오히려 새로운 것은 실현할 수 없게 된다' ('지의 관객 만들기', 27쪽)
아즈마 히로키가 겐론의 경영 같은 건 그만둬야 한다, 책의 집필같이 '본질적인 일'에 시간을 써야 한다는 충고를 10년 동안 여러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호의는 고맙지만 충고는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겐론이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계속하는 것, 이 자체가 제 철학의 실천이며 표현입니다. 제 철학이 '본질적인 것'에 틀어박혀 있었다면 결코 실현하지 못했을 테지요. ('지의 관객 만들기', 28쪽)
창업자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동기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사업으로 사람들의 문화를 바꾸는 데 성공했을 때 희열을 느낀다'였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공짜로 나누어주는 것보다 돈을 받고 파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공공기관이나 비영리단체의 활동보다는, 사기업의 비즈니스 활동이 더 '핫할' 때가 많은 거다.
세상에 좋은 콘텐츠가 지속가능하게 탄생할 구조를 만들고 싶은 나도 자꾸 비즈니스 구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뉴미디어에서 일해 보고, 그래서 스타트업에서도 일해 보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솔직히 이 다음부터는 어디서 답을 찾아보아야 하는지 조금 막막하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게 목표라면 어떻게든 그냥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자리에 비비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걸까. 애초에 그 자리가 아주 희소하거나 있어도 금방 사라지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닐까. AI가 이렇게 뜨고 있고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과 원리 자체가 완전히 바뀔 것 같은데 이 시기에 취재와 글쓰기만 갈고닦고 있는 게 정말 맞을까.
이제는 나에게 '온전히 만족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고 그저 '필요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조직'만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렇다면 필요한 경험은 무엇인가. 필요한 경험을 하는 대신 원하지 않는 경험도 해야 할 텐데 나는 얼마나 감수할 수 있나.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경험이 사실은 필요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돌이켜 보면 조직 경험이 도움되지 않은 적은 없다. 새로운 시기에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선택을 했다가 실패했다고 해도 그 경험 자체가 먼 미래의 내 발목을 잡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건 그저 용기와 약간의 '지르는 마인드'가 아닐까.
해야 하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다른 선택을 적극적으로 버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30대의 저는 단지 그게 두려워서 하지 못했어요. 겁쟁이였죠. 그래서 '원하면 뭐든지 될 수 있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척하고 다른 선택지도 쥐고 있었어요. 정말로 유치했네요. ('지의 관객 만들기', 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