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라는 '애매한 컴포트존'
한국 스타트업 시장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D2SF 양상환 센터장님의 페이스북 글을 읽었다.

사실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오고 나서 한국 스타트업 시장의 한계와 문제를 너무 많이 느껴서 심란했다. 그런데 이게 말 한두 마디로 쉽게 바뀔 문제도 아니고... 잘못 이야기하면 듣는 한국 사람들만 기분나쁠 이야기고... 해서 정작 한국에서 만난 업계 사람들에게는 별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당연하지만 나보다 먼저 미국을 오갔던 사람들은 훨씬 전부터 느낀 감정이었을 거다. 센터장님도 몇 년간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글로 정리해서 내놓으신 것 같다. 댓글이나 공유 반응을 보니 비슷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고. 왠지 저 글이 불씨가 돼서 뭔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감히 내 생각을 몇 자 적어본다. 참고로 나는 투자자도 아니고 창업가도 아니고 그냥 그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끔 질문을 몇 번 던져본 사람에 불과하다.
- 양상환 센터장님은 "한국 시장은 어느 정도의 자본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일까?"가 궁금했다고 쓰셨다. 내 버전으로는, "한국 시장은 그 많은 스타트업들이 '엑싯'할 가능성이 있는 그릇인가?"라고 쓸 수 있을 것 같다.
- 엑싯이라고 하면 상장 아니면 M&A다. 그런데 상장을 한 스타트업들은 거의 모두 몇 년 이내에 어려워졌다는 소식이 들리곤 했다. 그러다 보니 현실적으로 적당한 시기에 회사를 매각하는 창업자들의 경우가 가장 현실적인 성공사례로 비치곤 했다.
- 그러니까 내 의문은 이거였다. 적당한 성공이 아닌, '진짜 스타트업다운 성공'을 하는 스타트업이 한국 시장에서 정말 나올 수 있는 건가. VC들은 10년에 한 번 나온다는 네이버, 카카오를 기다린다는데 그 정도의 '성공 사례'가 10년에 한 번 나올 정도밖에 안 되는 시장인 건가.
- 아니 그런데 그렇다면 네이버, 카카오가 한국 스타트업의 최대치인가. 심지어 카카오는 아직도 약간 불안해 보이는데.
- 배민은 최고점에서 회사를 매각하는 데 성공한 케이스이고(외국 회사에), 토스는 아직도 레이스 안에 있지 무언가 '종결점'을 맞은 회사는 아니었다.
- 최소한 내 좁은 식견 안에서 "진짜 위너"가 된 스타트업은 쿠팡뿐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쿠팡은 미국에서 상장했다.
- 그러니까 한국에서 성장해서 한국 시장 안에서 성공적으로 엑싯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 그러니까 다들 그렇게 기승전 해외 진출이 되었겠지. 스타트업으로서 J 커브 성장을 지속해서 엑싯에 다다라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면, 한국 밖으로 나가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거다.
- 하지만 최근 남세동 대표님도 페북에 썼듯 해외 진출, 특히 미국 진출에 제대로 성공한 스타트업 거의 없다. 미국 진출에 성공한 케이스들은 미국 현지에 맞는 프로덕트를 새로 만들어서 미국 회사가 되는 수준의 선택을 한 곳들이다. 당연히 그것도 말도 안되게 어려운 선택이다.
- (특히 B2B는) 이미 고객이 있고 이미 한국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스타트업들이 해외 진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특히 미국 시장은 아무리 봐도 현지에 맞게 프로덕트를 새로 만들고 그 시장 세일즈에 모든 리소스를 다 투입해야 될까 말까 하는 곳이다. 근데 이미 한국 시장에서 고객과 매출이 있다면 프로덕트를 다 뜯어고치는 것도, 한국 시장에 들일 리소스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결정도 쉽지 않다.
- 즉, 기존 고객과 기존 프로덕트가 레거시가 돼서 발목을 잡는다.
- 실제로 YC 배치에 선정됐던 한국 팀 Aside가 YC로부터 들었던 거절 사유 중 하나가 "대부분의 매출이 한국 고객에서 나온다"였다고 한다. (이 팀은 YC 배치에 6번이나 떨어졌지만 결국 합격했다)
- 캐나다에서 PM으로 일하고 계신 코라와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GTM에 대한 이야기를 여전히 자주 한다. (도대체 왜일까 우리) 그런데 최근 코라의 인사이트는 '문화가 크게 개입되는 레이어에 있는 프로덕트일수록 해외 GTM이 어렵다'였다. 반대로 문화와 언어의 개입이 적은 백엔드, 기술 인프라 단계로 내려갈수록 해외 수출이 수월하고.
- 그런데 많이들 알듯, 우리 나라에서 잘된 스타트업들은 그나마 B2C가 대부분이다. 나는 B2B SaaS 스타트업 중 가장 큰 곳에 있었는데 그 회사의 해외 진출도 역시나 쉽지 않았고 그 이유는 대략 위에 쓴 것들 때문. 그리고 국내에서 딥테크 스타트업이 얼마나 주목을 많이 못 받고 얼마나 성장하기 어려운지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뭐.
- 스타트업 미디어들조차 딥테크 잘 안 다루려고 드는데 말해 뭐하나. 테크는 조회수가 안 나오니까 비즈니스 미디어로 기울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미디어들 사정 빤히 알지만... 그냥 이 모든 악순환이 답답해.
- 그나마 최근에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가 유니콘이 됐다. 이런 분야는 칩 샘플 만들어 보는 데에만 수백억원이 든다. 리벨리온의 경우에는 프리 A 단계에서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글로벌 최고 스펙의 인재들이 미친 속도로 움직이는 곳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정도는 되어야 딥테크여도 한국에서 유니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 또, 개인적으로 씁쓸했던 건데 기술 트렌드의 시차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한국에서는 이제 막 뜨고 있는 트렌드나 피처가 미국에서는 이미 몇 년 전에 시도했고 이제는 흘러간 유행인 경우들을 봤다. 되게 속이 쓰렸다.
- 그리고 정말 기본적이고 정말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정말 너무나 큰 허들이 영어. 나는 SF에 나와 보고 나서 의문이었다. 한 달 정도만 외국인들이랑 부딪쳐도 그들과 업무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왜 그간 그걸 안 했을까. 이 정도 영어로도 마음만 먹으면 외국인들 인터뷰할 수 있는데 왜 그간 그걸 해볼 생각을 한 번도 안 했을까. 왜 그 요만큼의 시야가 열리질 않았을까, 그동안.
- 한국에 나보다 영어 잘하는 사람 미친듯이 많을 텐데, 심지어 해외 경험 있는 사람도 훨씬 많을 텐데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국 시장 안에서만 뭔가를 하려고 들었던 걸까.
- 본투비 뼈 한국인으로서 생각해 보자면, 근본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 '다른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낯섦이 압도적으로 큰 거 같다. 샌프란시스코와 싱가포르에서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 걸 보면서 좀 충격받았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들의 '다른 세계'에 대한 민감도는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낮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서.
- 해외 진출을 한다고 해도 정말로 외국인과 제대로 부딪쳐 보는 사람은 적은 거 같고, 그나마도 거기까지 각오를 하는 사람도 흔치 않은 거 같다.
- (특히 B2B는) 이미 고객이 있고 이미 한국 시장에서 성과를 거둔 스타트업들이 해외 진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특히 미국 시장은 아무리 봐도 현지에 맞게 프로덕트를 새로 만들고 그 시장 세일즈에 모든 리소스를 다 투입해야 될까 말까 하는 곳이다. 근데 이미 한국 시장에서 고객과 매출이 있다면 프로덕트를 다 뜯어고치는 것도, 한국 시장에 들일 리소스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결정도 쉽지 않다.
- 보통 우리보다 시장도 인구도 적은데 스타트업이 활발하고 유니콘이 많이 나오는 나라로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를 꼽는다. 이스라엘 창업가들을 몇 명 만나보니 알겠다. 나라가 작은 것도 작은 거고,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을 경험해 보니까 그냥 무언가를 이루어야겠다는 동기가 훨씬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는 위에 말했던 대로 엄청난 개방성이 핵심인 거 같고.
- 그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애매하게(?)'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미국이나 중국만큼 큰 건 아니지만, 또 나가면 안 될 만큼 작은 것도 아니라서 한국 시장 안에만 있어도 먹고살 수는 있다는 거다. 그게 양상환 대표님이 말한 '애매한 컴포트존'이다. 너무나 공감가는 표현이라 통째로 인용한다.
"이런 착시와 함께 계속 커져만가는 유동성이 겹치면서 한국 시장은 애매한 comfort zone을 스스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처럼 애초에 너무 작아서 밖으로 나가는 것 말곤 선택지가 아예 없던가, 미국이나 중국처럼 대놓고 커서 안에서만 잘해도 되던가, 차라리 일본처럼 예측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라면 판단하기 좀 쉬울텐데, 우리는 적당히 크다 보니 한국 안에서도 잘하면 우리도 유니콘이 될 것 같은 환상을 갖게 되고,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를 못 느끼면서 시간을 보낸다. 깨달을 때는 이미 늦다. 이 시간은 고스란히 스타트업에게 기회비용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
어찌 보면 나도 '결국 답은 바깥으로 나가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텍스트 콘텐츠의 GTM을 하고 있달까... 근데 어렵다. 근데 이걸 성공시키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 다들 나와서 제대로 부딪히는 사람이 이렇게 없나, 싶다가도... 한국의 다른 스타트업이 글로벌 테크 씬에서 뭔가 엄청난 버즈를 만들어내야 나에게도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열심히 해서 기반은 쌓아 놓겠지만 분명히 뭔가 메가 히트의 순간이 필요하고, 그 순간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만 다룰 수 있는 어떤 차별점 때문에 올 거다. 그리고 그 어떤 차별점은 '한국'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우리 다같이 잘되어보자고요... 힘을 내자구... 나와서 박살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