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글을 쓰는 이유
오랜만에 대학생 시절 지인을 만났다. 정신없이 지난 10년간의 근황을 나누다가, 지금의 나에게는 제법 신선한 질문을 하나 받았다.
"그런데 너, 영상도 잘 만들지 않았어? 너는 글이야? 이제 워낙 미디어 주류가 영상으로 넘어가서..."
사실 아웃스탠딩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나에게 '왜 텍스트냐'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스타트업 업계 사람들은 생각보다 글을 많이 읽는다. 아니, '생각보다'가 아니라 그냥 많이 읽는다. 언젠가 '왜 IT 업계 사람들은 그렇게 일에 대한 책을 많이 내고 많이 읽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지금은 왜 그런지 안다.
나는 글을 읽는 사람들은 지적으로 나아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뇌를 돌려서 존재하는 존재임을 인지하고, 그 뇌에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을 부어서 조금 더 멋진 미래에 다가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혹은 그래야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스타트업에 있다는 건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다는 뜻이고,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으면 더 이상하지.
어쩌면 IT 업계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들이 화면 밖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 분야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추상적인 것을 붙잡아 현실로 가져오고 돈으로 바꾸는 일이니까.
그리고 추상을 가시화할 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게 글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1차적으로 텍스트로 유통된다. 글이 마이너라고 하기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나 폭발적으로 여기저기서 말 그대로 퐁퐁 '솟아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실 글은 주류에서 한 번도 밀려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상류'로 갈수록 글의 형태를 띤 콘텐츠가 많다고도 생각하고.
무엇보다 양질의 비즈니스 정보를 담은 글은 언제나 수요가 명확하다. (그 '양질'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딱히 학업에 뜻을 품지 않은 이상, 지적으로 나아져야 하고, 세상의 변화를 알아야만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일을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이니까. 조금 더 범위를 좁히자면, 특히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들이 그렇다.
아웃스탠딩에서도, 채널톡에서도 내 목표는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들, 혹은 그 자리에 있지 않음에도 업계 지식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쓰는 거였다. 그렇게 4년을 살아오고 나니 생각보다 의미있는 네트워크가 쌓였다. 내 글 중 최소 한 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상깊게 읽고, 바이라인의 내 이름을 눈여겨본 사람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가.
정보성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는 건, 이렇게 특별히 향상심이 있는 사람들을 나의 독자이자 고객으로 두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오는 즐거움과 이익이 내가 지금까지 글 쓰는 사람으로 남은 가장 큰 이유다.
보다 대중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다수와 소통할 줄 아는 그릇의 크리에이터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아니다. 나는 누구나 좋아하는 글을 쓸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 내 글을 읽어준 독자들(그리고 그들과 동류인 사람들)이 좋아할 글을 쓰는 것, 그게 아직까지는 나에게 가장 잘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