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 일기 (2) 3주쯤 울고 나니 괜찮네요
미국에 온지 5주 정도, 지난 번 글을 쓰고 나서는 한 달쯤 됐나.
분명히 매일 뭔가를 적으려고 했던 거 같은데 택도 없었다. 정신 차려 보니 5주가 그냥 지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싱가포르로 간다. 오잉? ㅋㅋㅋ 오잉? ㅋㅋㅋ
그러니까 저번 징징글을 썼던 게... 첫 아티클을 막 쓰던 시기인 거 같다. 겨우겨우 이오의 글로벌 진출기를 어떤 식으로 꿰어서 설명해야 할지 좀 감이 잡히고, 나의 1인칭 글로 써보자는 용기가 굳어졌던 시기. 그리고 어찌어찌 영어로 인트로를 쓰는 데 성공해서 드디어 조금, 일이 되던 시기.
근데 글이 막 손에 잡히기 시작하던 첫날 새벽에 괜히 감성이 엄청 터졌다. 새벽에 사무실에 혼자 앉아서 이오 글로벌 채널 영상들을 보면서 좔좔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웃긴다) 근데 이오 영상이 아주 강렬한 동기부여 콘텐츠라, 그때 나의 말랑위태한 멘탈로 시청하니까 정말 눈물이 펑펑 났다.
근데 이 영상 정말 좋다. 지금 EO CCO인 GW님이 EO 와서 처음으로 작업한 영상.
암튼 샌프란 일기 1편은 그날 밤에 좔좔 울면서 쓴 글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에 EO의 글로벌 진출에 대한 첫 번째 글을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일단 개인적으로는 내가 영어로 글을 쓸 수는 있다는 걸 확인해서 만족스러웠다. 내부에서의 반응은 밍숭맹숭했는데, 의외로 외부에서 강한 정성적 반응이 몇 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는 아프리카 학생인데 내 글을 읽고 너무 감동받아서 메일을 보냈다는 사람도 있었고,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스타트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데, 무엇이든 우리를 돕고 싶다며 메일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다. 다른 것보다는 어쨌든 내가 영어로도 뭔가 정념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는 데에서 큰 감동과 용기를 얻었다.
첫 글을 쓰던 시기부터는 슬슬 글로벌 미디어 팀하고도 가까워져서, 미팅이나 외부 일정이 있다고 하면 무조건 따라갔던 거 같다. 독자라고 연락이 오면 무조건 미팅을 잡기도 했다. 근데 외부 일정이나 미팅 몇 건 소화하고 나면 하루가 홀랑 지나 있었다. 매일 SF 사람들과 부딪치고 영어로 말한다는 것 외에 그 어떤 성과도 내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초조했다.
와중에 그 영어조차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네트워킹 자리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남들이 하하호호 떠들 동안 한 마디도 못 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그러고 나면 속상해서 뒤에서 좀 울었다.
그걸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냐 하면 솔직히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영어 못하는 거 알아서 잘 극복할 수 있다고 온 건데 어떻게 힘들다고 해... 그러다 보니까 더 외로웠다. 아무래도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연락하기는 어렵고, 당장 옆에 있는 건 동료들인데 아직 나는 그들에게 텍스트의 가치든 나의 역량이든 증명을 해야 하는 입장인 거 같고. 뭐 지금은 괜찮다. 우리 친하다.
신기하게도 샌프란 오고 딱 3주 되던 시점부터 이상하게 영어가 좀 편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크루AI라는 회사에서 하는 컨퍼런스에 갔는데, 옆 자리 아저씨가 갑자기 영어로 말 거는데 이상하게 잘 들리고, 나도 못난 영어나마 말하는 게 그렇게까지 부끄럽지 않았다. 그 아저씨가 2년째 스텔스 창업 중이고, 데이터를 넣으면 그 지식그래프를 빠르게 시각화해 주는 툴을 만들고 있다는 걸 이해할 정도의 대화는 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데모데이에서 만난 초기 창업가 애들이랑 잔뜩 티미팅을 잡고 나니까(한 12건 정도?) 이제는 정말 영어 대화가 크게 안 무섭다. 이제는 대화 시작할 때 나 영어 못한다고 사과도 안 한다. 물론 좀 중요한 미팅이거나 인터뷰면 스크립트를 열심히 짜 가야 하기는 하지만.
신기하게도 초기 창업가 애들은 그 누구도 내가 영어로 기사를 쓴다고 했을 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혹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냐고 물어보니까, '왜? 챗GPT가 있잖아'.란다.
그렇지, 테크를 믿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녹음기도 있고 회의록 툴도 많고 챗GPT도 있고 별별 툴이 다 있으니까 의지와 기획력만 있으면 못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거다. 어찌 보면 그 초기 창업가 애들은 어린 나이에 자기 나라를 훌쩍 떠나와서 낯선 땅에서 창업을 하는 미친 도전을 하고 있으니, 고작 영어로 기사 쓰는 일 정도는 전혀 불가능하게 들리지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여기서 5주 지내보니까 정말 내 생각만큼 그렇게 극적인 도전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여기 사람들은 더듬더듬 영어에 익숙하고, 한국에서 4년제 대학 나온 수준이면 여기서 매일 원어민들과 대화하는 데에만 열심히 임해도 영어울렁증 금방 벗을 수 있고, 그 정도면 아주 고급한 질문은 아니라도 큰 틀에서의 이야기는 알아들으면서 대화할 수 있고, 디테일은 녹음기와 STT의 도움을 받으면 그만이다. 이 정도의 도전(?)은 생각보다 여기서 되게 흔했다.
그런데 나와보지 않았으면 이런 사실조차 몰랐겠지. 한 발짝만 내딛으면 이렇게 바보 영어로도 취재의 풀이 훨씬 넓어진다는 걸 몰랐겠지. 여기서의 시간이 정말 꼭 텍스트 비즈니스의 미래를 찾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루하루 시야와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왜 이제야 나왔나 후회가 되다가도, 이제라도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국에 겨우 한 달 조금 넘게 나와 있었는데 벌써 그전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대체 몇 달 뒤, 몇 년 뒤에는 뭘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어떻게든 나와야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줄 알고 와봤더니 그냥 지나온 곳이 너무 좁은 판이었던 거 같아서 조금... 머쓱하기도 하고...
슬슬 아티클 공격적으로 쓸 수 있을 거 같다. 앞으로 한 달은 취재 기세 유지하면서도 발행 사이클 만드는 데 집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