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 일기 (1) 말도 안 되는 짓

Share
샌프란 일기 (1) 말도 안 되는 짓

미국에 온 지 딱 일주일째. 뭔가를 길게 쓰려고 하면 완성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 매일 억지로라도 영어로 말할 자리를 한 번 이상 만들고 있는데 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겠다고 했는지 깨닫는다.

리스닝은 전체 맥락을 겨우겨우 쫓아가는 수준이고 밀리언, 빌리언 어쩌구 하는 숫자가 나오는 순간 그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감도 안 오는 정도. 스피킹은 당연히 그보다도 못해서 문법에 안 맞는 소리인 거 알면서도 끊임없이 헛소리를 내뱉는 수준.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온 저널리스트고 샌프란 테크 씬에서 웹 매거진을 런칭할 거고 이 씬을 취재해서 퀄리티 있는 기사를 쓸 거라고 하면 다들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언론 기사'란 언어를 고도로 훈련해 온 사람들의 영역이고 그게 미국이라고 해서 다를 리 없으니까.

지금까지 대부분의 미팅에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는데(아무래도 내가 말을 훨씬 못하니까), 희한하게도 오늘의 미팅에서는 내 이야기를 깊게 했다. 상대방이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사람이라 인터뷰에 능숙했던 게 아닌가 싶은데, 그 사람이 용기를 많이 줬다. 다른 언어권에서 미디어를 런칭하고 콘텐츠를 만든다는 건 대단한 도전이고, 그런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라고. 너와 네 팀의 이야기는 충분히 특별하니까 용기를 갖고 이야기하라고.

영어도 못하는 게 맨날 외국인들 만나서 떠들러 다니니까 팀원들은 내가 자신감 넘치는 사람인 줄 안다. 아니 자신감 전혀 없고 매일 매 순간이 무섭다. 나도 한국에서 글 잘 쓰고 말 잘 하고 나름대로의 커리어도 있는 사람이었는데 여기서는 대화도 우물쭈물 못 이어가고 보여줄 것 하나도 없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순간을 통과해야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걸 너무 아니까 그냥 한다. 괴로움을 먼저 생각하면 발이 나가지 않으니까 일단 약속을 잡고 보고, 행사를 신청하고 보고, 뭐라도 인사를 던지고 본다. 아쉽게도 매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 기회로 만들지 못한다. 언어가 딸려서. 근데 맨날 한국어로 말하고 쉽게 접근 가능한 정보로만 글 쓰고 그러려고 굳이 미국까지 온 게 아니니까.

예전에는 무엇엔가 부딪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저렇게 버텨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분명 뭐가 되겠구나, 생각하며 조금 부러워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안될 것 같은 일에 부딪쳐 보니까 이렇게 버티기만 해도 뭐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부딪치는 것만으로는 전혀 안 되고 돌아보고 집어넣고 다시 부딪치는 루프를 아주 열심히 돌려야 뭐가 될까말까 해 보인다.

그래도 첫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덜 불안하다. 결국 어떤 글을 쓸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Read more

세 번째 SF 출장

세 번째 SF 출장

어제 HF0(유명한 해커 하우스다) 커뮤니티 디너에 다녀왔다. 첫 번째 영어 인터뷰 기사의 인터뷰이였던 파블로를 마주쳐서 반갑게 근황 토크를 했다. 코파운더였던 나다브와는 헤어지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로봇을 보내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요즘은 영어로 말하는 건 좀 어떠냐고 물었다. How's your English going? 이라고 했던가. 내가 파블로를

By Hyeri Jo
한국이라는 '애매한 컴포트존'

한국이라는 '애매한 컴포트존'

한국 스타트업 시장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D2SF 양상환 센터장님의 페이스북 글을 읽었다. Sanghwan Yang한국 스타트업 시장 정말 괜찮은걸까? 작년 NAVER D2SF 북미 투자가 국내 투자를 ‘2배 차이로’ 넘어섰다. NAVER Ventures 투자까지 포함하면 북미 투자 비중은 더 크다. 지금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투자 건들도 대다수가 북미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By Hyeri Jo